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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1
글쓴날 : 2002-11-01 22:27:10
글쓴이 : 최은석(루도비꼬) 조회 : 1758
제목: 명동성당 유감

저는 창원에서 살고있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명동성당에서 일어난 최근의 사태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명동성당의
주임사제와 신자들에게 두서없이 몇 자 적습니다.

명동성당 들머리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명동성당축성 100주년 기념사업
취지의 글]이 있습니다.
그 글 중에 
"....이 명동대성당은 근세역사를 지켜보며 겨레와 함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를 나눠왔습니다. 현대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 특히 쫓기는 이들의 피난처가 되 주기도 했습니다. ..... 그래서
우리는 다가오는 세기를 앞두고....민주화의 성지인 이곳 명동 언덕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이라는 글귀가 유난히 눈에 들어옵니다.

굳이 이 글귀를 인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서
명동성당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가치와 의미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명동성당은 하느님 백성의 피난처가
되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늘나라를 지향하면서 동시에 세상 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그 내부의 세속적인 가치에 치우칠 수도 있고 또 그러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다양한 생각을 가진 하느님 백성을 앞에서 이끄는 목자로서
사제까지 그러한 세속적인 가치와 판단을 한다면 이는 더 이상 지상에서의
하느님 나라 건설이라는 교회의 사명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지금 이 홈페이지의 게시판에도 명동성당에 교적을 둔 신자인 듯한 많은
사람들이 농성하는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글들이 올라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아무리 세속적인 힘이 있거나 또는 자기 안에 갇힌 이기적인
잘못된 신앙 때문에 진리를 거스르는 요구를 한다 하더라도 사제는 가난한
이들을 우선해서 사랑하시는 하느님 안에서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직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신앙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을 바른 길로 이끄는 왕직을
용감하게 수행해야 합니다.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는 사람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은 명동성당을
자신들의 안식처로 생각하고 사랑하는데 어째서 명동성당의 사제나 일부
신자들은 명동성당을 그들만의 독점적인 소유물로 생각합니까? 왜 자꾸
스스로 울타리를 치면서 작아지려고 하는 것입니까?

농성하면서 떠드는 소리를 두고 기도에 방해가 된다고 합니다. 성당은
조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마태오 25장의 최후의 심판 장면은 우리가
어떻게 신앙을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농성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하느님 백성의 절규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아기가 우는소리에 화가 나서 그 아기를 죽인 끔찍한 사건들을
접합니다. 농성하는 이들의 절규를 단지 시끄럽다는 이유로 성당에서 내
쫓아야 한다면 아기를 죽인 비정한 부모와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성당은 성스러운 곳이라고 합니다.
성스러움이 무엇입니까? 누가, 그 무엇이 하느님보다 더 성스럽습니까?
2천년 전 하느님이신 성자 예수께서 가난하고 병들고 천대받던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그들을 받아 주셨습니다.
교회가 갈수록 경제적으로 풍요한 부자들을 중심으로 편안한 휴식과
그들간의 사교의 장으로 변해 간다면 하느님께서 함께 하는 성지가 아니라
회칠한 무덤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병자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당신에게 다가올 때 이를 막으려던
제자들을 오히려 나무라셨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인류를 다 똑같이
사랑하시지만 부자와 가난한 자가 대립할 때 분명히 가난한 자의 편에
서십니다. 세상의 실정법이 아니라 하느님의 양심법에 따라 인적의 존엄을
나누고 진정한 사랑을 실현하려고 노동운동을 하다 공권력이라는 불평등한
폭력 앞에서 갈기갈기 찢기고 쫓겨온 이들을 교회는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그냥 받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교회가 자기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주어야 합니다.

설령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내쫓지는 말아야 할 것인데
공권력을 요청했다니 참으로 슬픕니다.
한국교회는 이제라도 하느님의 정의의 편에 분명히 서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 선조들이 피로써 지킨 자랑스러운 신앙을 후손에게
물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그간에 사회적 약자에게 따뜻한 사랑을 실천하지 않은 점에
대해 참회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 동안 불상한 사람들에게 많이 베풀었다고 반박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교회가 의식적으로 갈등을 외면하면서 오직
이념적으로 갈등의 소지가 없는 그런 사랑의 실천에만 매달려 오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인간적인 권리를 호소조차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런 대로
사랑을 나눈다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자신의 권리를 위해 누군가와
대립하여 싸우게 될 때에 교회는 중립이라는 애매한 태도를 보이며
관여하기를 꺼려 오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돈 많은 사람들이 성당을 떠날까 싶어서 그러는
것입니까?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혼자서, 성당 안에서만 기도하는 것으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정말로 미사에 방해가 됩니까?
십 수년 전부터 우리 한국교회의 미사 통상문이 바뀌었습니다. 그 중에서
옛날에는 "너희는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라"고 했던 부분이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로 바뀐 것은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큰
것입니다.
미사라는 예식 속에 갇혀 있던 신앙을 예수님을 본받고 실천해야 한다는
실천강령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교회 밖으로 나가서 세상 사람들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그들의 소리에 응답해야 합니다.
하물며 성당으로 피해 찾아온 사람들 속에서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서 어찌
세상 속에서 하느님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바오로 사도는 그 어떠한 것도 우리를 하느님과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느님께 대한 사랑인데 공권력이 우리의
사랑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설령 한국교회가 그들을 외면한다하더라도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편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 교회가 하느님과 대항해서 싸우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1. 김은지 : 11-08 - 좋은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농성하시는 분들의 태도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곳 저곳에서 웃고 떠드는 모습들, (x)
2. 김은지 : 11-08 - 게임도 하고 물론 진지하시겠지만 장난섞인 목소리의 얼굴들이 미사를 망치고 있는게 아닐까요? 그 취지는 정당하고 필요한 일이겠지만 (x)
3. 김은지 : 11-08 - 그에 합당한 태도를 취하심이 좋을 듯 싶습니다. 이건 단지 제3자의 눈으로 말씀 드린 거구요, 열쉼히!! 화이팅 하시길 바랍니다. 꾸준히 응원할께요.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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