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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4
글쓴날 : 2002-11-01 14:13:30
글쓴이 : 명동성당지킴이 조회 : 1724
첨부파일 : 김수환추기경께드리는글.hwp (35940 Bytes)
제목: 김수환 추기경님에게 드리는 글

김수환 추기경님께 드리는 글


명동성당의 어느 언저리에 앉아 마리아상과 그 아래 잔잔하게 그러나
끊임없이 흔들리는 촛불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의 평화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는 오만한 착각을 일으킬 때 즈음, 문득
시선을 돌리면 낯선 노동자들의 천막이 어김없이 붙박혀 있습니다. 이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오랜 세월 되풀이되었던 투쟁의 언어와 노랫소리도
들려옵니다.

순간, 모순을 느낍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초월해버린 듯 평화롭기만
했던 공간이 실은 우리들의 격렬하고 절박한 싸움터였음을 새삼 상기하며
인간세상의 불완전함과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순과 아이러니는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며칠전 성당입구에서 여성
신도의 너그러운 미소와 함께 전해진 서울주보에는 세속법에 의해 범죄자로
낙인찍힌 저희들의 이야기가 끼워져 있었습니다. 물론 저희들은 그
글안에서도 여전히 정의와 진리를 어지럽히는 폭도요, 교회의 숭고한
이념을 파괴하는 이단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에게는 사제들께서
쓰신 그 글보다 바로 위에 있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10월 교황님의 기도지향'이 가슴깊이 박혀왔습니다. 

'사회속의 교회', '참여하는 교회'를 일구기 위해 일생을 바쳐오신
추기경님께 남다른 의미일 수밖에 없을 이곳 명동성당도 마찬가지입니다.
87년 이 땅의 민주화를 열망하는 정의로운 사제들과 핍박받던 백성들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리던 이곳에는 여전히 스스로의 육신을 학대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 수 밖에 없는 서러운 노동자들이 기거하고 있습니다.
다만 달라졌다면 단식으로 메말라가는 그들의 육신 위에 달려있는
스피커에서는 '민주화'와 '정의'대신 저희들더러 하루 빨리 성스러운
이곳을 비워달라는 신부님의 열에 들뜬 목소리가 지금 이시간에도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존경하는 김수환 추기경님, 

추기경님께서 사제의 양심을 걸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시느라 온갖 핍박을
받으시던 그 때로부터 수십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그 모진 세월에도 아직
까마득한 절벽처럼 변하지 않는 것들이 분명 존재하는데 가톨릭은 벌써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72년 추기경님께서 박정희 독재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해 그들로부터 보복성 세무사찰 등을 당하며 핍박받았던 성모병원이
30년이 지난 오늘날, 성당문을 열어주고 십자가에 매달려 울부짖는
저희들을 공권력의 군홧발 밑으로 밀어넣었습니다. 이뿐입니까. 당시
추기경님께서 이끄셨던 한국 가톨릭의 민주화 노력 등 사회참여를
못마땅해했던 정권과 수구세력들이 추기경님을 모함하는 편지와 사람을
보냈던 바티칸에 이제는 저희들이 무릎꿇고 한국 가톨릭의 자성과
장기파업사태의 해결을 호소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로 저희들의 파업은 142일째, 단식 17일째를 맞았습니다. 그동안 8명의
동료들이 병원으로 실려가고 4명의 동료들이 생명이 위험하다는 진단을
받고 농성장을 떠났습니다. 차수련위원장님은 혈압이 70/40mmhg로 급격히
떨어져 의사 진료결과 심부전증과 폐에 물이 차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단식을 즉각 중단하지 않을 경우 위험하다고 경고하였습니다. 또한 X-Ray상
폐렴과 기관지염이 나타나 항생제 치료를 하지 않으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해서 어제부터 항생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현재 하루에도 몇 번씩
호흡곤란 상태가 나타나 위기를 맞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수련위원장님은 "CMC 파업이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단식을
접을 수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경각에 달려있는 상황에서도
단식을 고수하는 위원장님앞에 눈물을 흘리는 것과 하나둘 쓰러져가는
동료들에게 고작해줄 수 있는 것이 구급차를 부르는 것 밖에, 정신차리라고
울부짖는 것 밖에 없는 저희들의 무력함이 죄스러워 뒤돌아서면 바로 곁에
있는 주님의 집이, 평온한 성모 마리아님의 형상이 저희들을 또 한번
통곡하게 합니다.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룩되기를 기도하는 그대로 이
땅에서 이미 시작되어야 한다'며 핍박받는 노동자들을 외면치 않으셨던
추기경님께서는 잘 아실 것입니다. 이 땅의 노동자들이 140일 동안
투쟁한다면 이는 필시 어떤 곡절이 있을 것임을. 가진 자로부터 억울한
사정을 당해 눈물짓는 노동자의 어깨를 두드려 보셨던 추기경님만은 아실
것입니다. 이 땅의 어떤 노동자도 돈 몇 푼을 위해, 이기적인 그들만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140일동안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이토록
처절하게 싸우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하물며 다른 곳도 아닌 병원에서 아픈
이를 치유하며 주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했던 가톨릭병원 노동자 6백명이
140일동안 싸우고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저희들이 깊이
상처받았음을 의미합니다. 받지 못한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옳지 못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느 세속의 절대 권력으로도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 인간의 존엄성이 세속의 사업주와 다를 바 없이 가톨릭
의료원측 으로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혔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의료원의 몇몇 사제들은 지난날의 노동운동이 인권운동 차원에서
전개되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이번의 파업은 자신만의 이익을
챙기고자 하는 이기심에서 비롯되어 대의명분을 찾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높아진 임금수준이 노동자들의 인권향상의 척도라는 단순논리로
지금까지도 가톨릭 의료원 노동자들이 직면해 있는 반인권적인 현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추기경님, 저희는 처음부터 분명히 말했습니다. 돈 몇 푼을 바라지
않습니다. 임금인상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희도 가톨릭에서
보장하는 신성한 노동의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의료원장님,
일을 하다 사고를 당해도 스스로 책임져야 하고 임신을 해도 법에서 정한
90일분의 유급휴가를 받을 수 없는 현실을 바로잡아 주십시오. 신부님,
인력이 부족해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조차 참기 힘든 모욕을 감수해야
하고 더 이상 몸이 아파도 윗사람의 명령으로 일하다 쓰러지는 노동자가
생겨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수녀님, 제발 만삭의 임산부가 야간근로를 하다
그 자리에서 쓰러져 선혈을 흘리며 아이를 잃어야 하는 참혹한 일만은 없게
해주십시오. 회식자리에서 신부님과 의사들 옆에서 술 따르기를 강요받지
않게 해주십시오. 이것이 이기적인 요구입니까? 이것이 인권의 문제가
아닙니까? 추기경님, 인권의 문제라도 저희가 공익사업장인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이기에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까?

가톨릭 의료원의 사제들은 이야기합니다. 정부의 직권중재안은 노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해결방안이며 법은 공익을 위해 합의된 약속이므로
지키는 것이 원칙이다. 정의와 진리, 법과 원칙에 입각해 파업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추기경님께서는 일찍이 인간을
옭죄는 사회제도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용자와 근로자가 서로 대립적 감정을 씻고 아침저녁 만나면서 인사도
나누고 잘 지낸다면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런 감정과는 별도로
근로자가 여전히 제도적으로 불리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든지 근로자의
기본 삼권이 사실상 행사할 수 없도록 묶여 있다면 이는 결코 참사랑이라
할 수 없다' 저희들을 범법자로 만든 유일한 법적 근거인 직권중재는 바로
추기경님께서 말씀하신 그 기본삼권 중 병원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을
제약하는 법으로 ILO에서도 수차례 폐지를 권고한 국가보안법 버금가는
악법중의 악법입니다. 헌데 그 악법이 '현행법'이기 때문에 가장 좋은
해결방안이며 공익을 위해 합의된 약속이라 저희가 따라야 하는 것입니까?
'근로자 학대와 인권침해는 창조주께 대한 모독'이라고까지 명시한 가톨릭
사목헌장 27항은 세속의 법보다도 아래 있는 것입니까? 저희 가톨릭 병원
노동자들은 정녕 한국 가톨릭 역사속에서 정의로운 사제들이 범인 은닉죄와
불고지죄로 수난을 당하시면서도 끝까지 지켜주셨던 주님의 어린양이 될
자격이 없는 것입니까?

김수환 추기경님, 

추기경님께서는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60년대 지극히 보수적이었던
가톨릭 교회가 추기경님의 노력으로 예민한 사회문제에 대한 공식적으로
발언한 최초의 성명서는 다름 아닌 억압받는 노동자들의 문제였습니다.
이때부터 한국 가톨릭은 종교의 영역을 넘어 이 땅의 민주화를 열망하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에게 따스한 주님의 품이요, 정의와 희망의
이름이었습니다. 군부독재와 문민독재가 탄압의 칼날을 휘두르면서
가톨릭도 온갖 수난과 박해를 받았지만 차가운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새벽을 맞을지언정 단 한번도 군부독재와 문민독재에
무릎꿇어 신성한 교회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9월
11일 절망했습니다. 주님이 저희를 버리셨다고 절규했습니다. 성모병원에
공권력이 난입한 것만도 참을 수 없는데 성당에 들어가도 좋다는 신부님의
서명이 적힌 증명서를 받았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어느 경찰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매달려 있는
십자가를 붙잡고 구원을 호소하는 동료가 또다른 예수님의 형상으로 보이지
않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노예처럼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기
때문입니다. 추기경님, 아직 주님의 품안에 들지 못한 사람들도 압니다.
설사 살인자라 하더라도 주님의 안식처로 피난한 자에게는 경찰의 군홧발이
아닌 사제의 가르침과 교화만이 허용된다는 사실을. 하물며 대다수가
신자요, 내 일터가 전부라고 믿었던 순박한 노동자들이 비명과 폭력이
난무했던 주님의 집에서 내쳐졌습니다. 가톨릭의 숭고한 이념을 지킨다는
명분아래. 그리스도가 매달린 십자가 아래에서 저희들은 그렇게
버림받았습니다. 

사제들께서는 아직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다. 파업 돌입직전까지 그러셨던
것처럼, 파업에 들어간 후에도 그러셨던 것처럼 침묵하고 계십니다. 물론
가끔씩 성실하게 교섭했다는, 그래서 21개 사안에 대해 교섭을 통해
합의점을 이미 찾은 바 있었다는 말씀을 하시긴 합니다. 그러나 이는
저희들 중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실입니다. 결국 정진석 대주교님께 대화를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대주교님께서도 말씀이 없으시며 지금까지 단
한차례도 저희를 만나 주시지 않고 계십니다. 저희는 이럴 때가 가장
서럽습니다. 경찰들의 방패에 맞아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온갖 수난과
모욕을 당하는 것보다도 사제들의 침묵과 무관심이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사제들께서는 평소에 일터에서는 저희를 신도로 보시고 봉사를
요구하시면서 협상을 할때는 세속의 사업주들을 닮아가시는 것 같습니다.
왜 저희들과의 대화를 이토록 거부하시는지 참담함에 가슴에는 지울 수
없는 멍이 들고 있습니다.
추기경님, 설사 사제들께서 저희를 동등한 협상의 상대로 인정치
못하신다하더라도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제라면 이것이 왜 안되는
것인지. 다르게 생각해볼 수는 없는지 대화로 타이르고 설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분들 본연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김수환 추기경님, 

추기경님의 이름 석자는 한국사회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이름이자 이 시대, 이땅의 양심과 정의를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보수적인 가톨릭으로부터 참여하는 교회, 실천하는 교회를
만드신 장본인이십니다. 그러나 지금 현실의 가톨릭은 어떻습니까?
추기경님께서 고난과 박해를 받아가시면서 세워왔던 한국 가톨릭의 긍지
높은 역사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추기경님께서도 알다시피 이미 저희들의
싸움은 가톨릭 의료원과의 갈등의 차원을 넘어 전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지난 9.11 성소 난입사건으로 인해
가톨릭의 많은 신도들이 탄식하고 심지어 등을 돌리는 신자들마저 생겨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저희들로 인해 추기경님께 심려를 끼쳐드리고
가톨릭의 이름에 상처를 내는 것 같아 두렵고 죄송스럽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지금껏 의료원 사제들의 모습속에서는 이웃을 사랑하라, 가난한
자들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모습보다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주님의 아들딸들인 인간을 사랑할 줄 모르는 율법학자의 모습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저희들의 눈에 비친, 그리고 21세기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핍박받는 노동자들의 눈에 비친 한국 가톨릭의 부인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추기경님, 저희를 외면하지 말아주십시오. 억압받는 자들과 함께 했던 한국
가톨릭이 지금 겪고 있는 모순을 외면치 말아주십시오. 지금 이 순간에도
명동성당에서 추위와 배고픔으로 탈진해가는 동료를 끌어안고 눈물 흘리는
노동자들이 있음을 기억해 주십시오. 혹여, 저희들이 말하는 진실을 못
믿으시겠다면 세상속에 나가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가장 강직하고
정의로운 사제에게 성모병원 파업의 진실을 여쭈어 주십시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건강 상하시지 않으시길. 정의로우신 주님께서
언제나 추기경님과 함께 하시길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2002. 10. 10
                 명동성당에서 CMC 노동자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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